쉽지 않은 길 고백

지난 주 다녀간 언니 앞에선
"그래 결혼 하고 싶을때 빨리 보내야지.." 라고 하셨다면서
정작 그와 함께 대구 집을 방문했을 때
울 엄마의 표정은 내내 어두우셨다.

저녁을 먹을때도 차를 마실때도
내내 표정이 어두웠던 엄마에게 그가 어떻냐고 물었더니
우리집 도착해서 부터 그가 저지른 실수(울 엄마는 예절 강사이다.-_-)들을 하나 하나 언급하면서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둥..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 사실 엄마가 지적한 항목에 대해서는 예절강사 딸인 나도 몰랐을 정도로 크게 욕먹을 건 아니었다.

그가 사 온 선물을 풀어보지도 않고
나와 그 앞에서 "자식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둥 아쉬운 소리만 늘어놓으신다거나
"사실은 결혼을 허락받고자 왔습니다."는 그의 말을 다른 주제로 돌려버리며 얼버무리신다거나

뭔가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내 생각과는 전혀 딴 판인 엄마의 행동에..
간만에 간 집에서도 불편하게 있다가 와야만 했다.

싫은 소리 들은 줄도 모르고 맛있는거 잘 얻어먹고 간다며 싱글벙글한
정말 어찌보면 멍청해 보이기도 하는 노루 치와와 앞에
엄마가 지적한 얘기를 차마 꺼내지도 못했다.


엄만 아쉽다고 하셨다.
더 좋은데 보낼 수도 있는데.. 라는 아쉬움.

더 좋은데가 어딨겠냐..
스물 여덞 끝자락에 선 나이 먹을만큼 먹은 딸래미는
짝사랑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이런 관계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는 마당에..


하지만 옛날 사람인 울 엄마를 끝까지 이해시키지 못한채
씁쓸하게 올라와야만 했던게 못내 아쉽다.


엄마, 기대를 낮추세요.

넓은 집

어제 자려고 누우며 불을 껐는데
문득 불을 끄니 나의 작은 오피스텔이 무척이나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때문에 싸우고 홧김에 계약해서 이사온지도 6개월.
그냥 1년만 살다가 이사 가버릴거야.
하면서 못도 안치고 살아온지 6달째인데..

어느덧 살림살이는 정말 여느 신혼집 못지않을 정도로 많아지고
(게다가 나는 욕심내서 32인치 LCD TV까지 사지 않았던가.-_-^)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새록새록 정도 든단 말이지..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그렇게 싫지도 않더란 결론. 이런..

이러다 결국 결혼해도 여기서 살게 되는거 아닐랑가 모르겠다.
노루치와와 녀석 짐도 별로 없으니 둘이 살기엔 좁지는 않겠다만..

뭐 어쨌든 원래 짐도 별로 없었던  노마드 여인네 혼자살기엔
벅차게 넓은 이 오피스텔..(사실 실평수는 그렇게 크지도 않다.ㅋㅋ)
정말 1년만 살고 떠나게 되는게 아쉬워 잠도 쉽게 들지 못했다.


어쨌든 자가든 전세든..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ㅋㅋ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해왔던 나이기에 이런 기쁨이 더 클지도.
예전 동거인과의 생활도 꽤 괜찮았다. 맥주와 수다가 끊이지 않았던..
바퀴벌레와 차가운 욕실, 그리고 주차문제만 아니면 거기도 최상의 공간이지 뭐.


오늘도 노루치와와는 작업이 늦어져 못만날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벌써 이틀째네..
거의 매일 보던 사이인데..ㅋㅋ


갑자기 업무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제길 퇴근 2분전에 회의실 불러서 조용히 일던져주는건 또 뭐냐.)
일주일에 한번 있는 이태리 요리 수업 개강 이래 첨으로 결석하고 일하다가
먹을게 없는 집에 양상추나 한통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수업도 못가고 편도선도 약간 부은 나를 위해
(마침 주말에 스테이크 소스로 만들고 남은 가벼운 와인도 있었다.^^)
글뤼바인이나 끓여주려고 계피랑 오렌지랑 샀는데
막상 집에 와서 레서피를 검색해보니 정향과 레몬도 필요하다고..

반쪽 재료들로 끓이자니 왠지 어색해서
허탈한 마음에 귤이나 까먹다가..
다시 한번 넓은 집에서 한숨만 푹푹.


참.. 우리집은 넓고 아늑하고 좋구나.

잠도 안오는데 넷북 끌어안고 가십걸 다운받아놓은 거나 보다가 자야겠다.

Ex의 결혼 고백

딱 1년전에 헤어진 나의 ex - 미스터한.
저질체력에 독실한 크리스챤인데다 불투명한 장래 때문에
지난 해 겨울이 오던 날 공식적으로 헤어졌다. 

지난 주 구 동거인의 커플과 노루치와와 이렇게 넷이 간 스키장에서
곤돌라 탑승장 앞에서 노루치와와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그를 보았고..(그는 날 못알아봤다. 고글, 보드복 다 새로샀으니깐..^^)
아직도 그 구부정한 자세와 어설픈 미소를 보며 갑자기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왜 이제와서?)

곧 새로 생긴듯한 핑크색 보드복을 입은 여자친구가 뛰어왔고
리프트를 타러 총총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어느새 노루치와와가 다가와 뒤에서 "왕~!"하고 놀래키며 꼭 껴안아주었다.
역시 지금 내 남친이 최고군..
키도 크고 젊고 멋지고..ㅋㅋ

그리고 1주일 후

h언니가 전에 약속 파토낸거 미안하다고 밥사준다고 불렀다.
h언니는 미스터한과 나를 소개시켜준 중매인이기도 하며
미스터한과는 같은 부서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결혼 언제 하냐는 h언니의 질문에
빠르면 내년 상반기 늦으면 내년 하반기라며 성의없이 대답했는데
언니는 갑자기 "너 3월에 결혼해~" 하는 것이다.

다짜고짜 왠 3월?
"으이구.. 걱정마~ 나 얘 붙들어매서 내년 안엔 꼭 결혼할게.." 하며 안심을 시켰다.

밥먹고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지난 주 스키장에서 미스터 한을 본 얘길 했더니
"동생이랑 왔디?" 하고 묻길래
"아니, 여자랑 왔던데" 했더니

갑자기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응.. 날 잡았어." 그러는 거다.

언니는 그 불편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에 미안했던지
"4월이래.. 넌 그러니깐 3월에 결혼해야 안 지는거야.."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더라.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던 날,
h 언니를 포함한 나와 미스터 한을 알았던 사람들은
뭐 그렇게 서두르냐며 분노했었다고..
그렇게 울고불고 하더니 재빨리 결혼 계획 잡아버리는 그가 괘씸했었다고..
그래서 내년에 결혼할거라고 큰소리 치는 내게 은근히 그보다 먼저 결혼하길 바랬었다고..



괜찮아.
그런 걱정 안 해줘도..

이미 미스터한보다 훨씬 멋지고 괜찮은 남자 만났잖아.

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한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주말을 같이 보내기 위해 우리집에 와서 날 기다리고 있는
노루치와와를 위해 애플 타르트를 사서 들어갔는데

아이같이 웃으며 맛있게 애플 타르트를 먹는 노루치와와를 보니
그 씁쓸했던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나도 나이를 좀 먹은듯 하다.
ex의 결혼소식을 듣다니 말이다.

(그 전, 그 전전의 "그"들도 이미 장가를 갔을거라고 믿는다.)

난 괜찮다.
난 괜찮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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